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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야기

차와 사랑의 연시

에세이 쓰는 여인 2023. 11. 11. 19:46

문학에서 사랑의 시는 빠질 수 없는 소재입니다.
그 중에서 남녀의 사랑은 시대를 초월하는 시제잖아요.
애정이 넘칠 때의 마음과 행동은 시대가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해요.

당나라 시인 최각崔珏이 쓴 <미인에게 차를 맛보게 하다美人嘗茶行〉를 보면 사랑하는여인에게 차를 마시게 해주려는 남자의 행동이 묘사되는데, 요즘 남자와 비교해 그리 다르지 않은것 같아요.
오히려  더 낭만적입니다.


 
구름 같은 머릿결 베개에 떨구고 곤한 봄잠에 빠졌는데
서방님은 맷돌에 고이 갈아 말차를 만드네
살며시 앵무새 시켜 창을 쪼아 소리 내게 하여아리따운 미인의 깊이 든 잠 깨웠네
은병에 담은 샘물 한 그릇
송풍회우 소리에 차 거품 익네

앵두 같은 입술로 푸른구름 마실 때
목 안으로 향기 마시니
상쾌한 예쁜 얼굴 밝은 눈망울 점차 열리니
가을 물 어린 듯
거문고 뜯어보나 취한 마음 일어나
탁자 앞에 앉아 금쟁을 밀쳐놓고
말없이 생각에 잠기네
꿈속
일을


 
 아름다운 부인이 남편이 준비한 말차를 입술에 닿았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의 사랑스런 눈길이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한편 송 대의 시인 육유는 애절한 연시를 남겼습니다. 그의 시 차를 맛보다가 헤어진 아내를 잊지 못하는 심정으로 가득합니다.

매 발톱 같은 푸른 찻잎이 놀라 싹텄으니
물 끓여 백옥같이 뜬 차탕을 보리라.
졸음을 백리 밖까지 쫓아내고
술은 이름조차 꺼낼 수 없다네
일주차 불에 쪼이는 향기에 옛 추억 담겼고
곡렴수로 차 맛보러 여산 갔던 일 생각나네
은병과 동맷돌 제대로 갖추어놓았지
애달파라, 가녀린 손 차 사발 받쳐주던 그녀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며 즐겁게 보내던 시간이 시에 절절히 드러납니다.
소흥 회계산 일주령에서 나는 일주차의 향에 서기에도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네요.
동맷돌로 차 갈고 은제 다병으로 물 끓여 차를 타서 손에 받쳐 들고 차를 권하던 아내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는 마음을 토로하고 있어요.

애달파라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차를 예찬한 대표적인 분이 고려 문인인 이규보입니다.
먼저 한번 볼까요!

선사는 어디서 이런 품질을 얻었는가
손에 닿자 먼저 놀라운 향기가 코를 찌르는구나
이글거리는 풍로 불에 직접 달이고
꽃무늬 자기에 손수 타서 색깔을 자랑하누나

입 안에서 차지고 부드러우며 순한 것이 어린아이의 젖 냄새 같구나
부귀한 집에서도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 선사 이를 어찌 얻었나 신기하구려


중국의 시에서는 차가 사랑의 소재로 쓰였다면, 이규보는 유차의 맛이 입에 붙을 정도로 맛있으며, 어린아이의 젖 냄새처럼 부드럽고 순하다고 했습니다.
또 이른 봄날 천자에게 바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딴 찻잎으로 만든 차에 비유함으로써 유차의 품질과 맛이 대단히 우수하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오로지 차의 맛과 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규보가 규선사에게 써준 시는 금방 다른 문인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이 시를 본 주변 문인의 화답시가 줄을 이었다고 해요.

세상의 모든 맛은 이른 것이 귀하니 하늘이 기꺼이 사람 위해 계절을 바꾸어주네

봄에 자라고 가을에 성숙함이 당연한 이치인데 이에 어긋나면 괴상한 일이건만

근래의 습속은 대개 기이함을 좋아하는구나.

이규보는 규선사에게 봄 술을 빚어 차 마시고 술 마시며 평생을 보내 보자는 말로 유차와 관련된 첫 번째 시를 마무리합니다. 이는 친근함에 따른 격의 없는 표현인데요.

이어서 읊은 두 번째 시<다시 앞의 운자를 써서 보내다>에서 이규보는 유차처럼 귀한 차는 함부로 남에게 주지 말고 자신에게 보내달라는 투정까지 곁들입니다.

섣달에 움트는 싹 평소에 가장 사랑하니 맵고 강렬한 그 향기 코를 찌르는구나 몽산에서 제일 먼저 딴 차 우연히 얻어 끓기도 전에 우선 맛보았네
미친 객이 한번 맛보고 유차라 이름 했으니 늙은 나이에 어린애처럼 탐내는 데야 어찌하겠나

진짜 차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차와 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