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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의 차살림에서 발견되는 여섯 가지 특징 - 2.3.4

 

1. 차살림

2. 차 끓이는 땅화로

3. 낮고 작은 방문

4. 차사발

5. 고요함

6. 풍류를 즐기는 법

 

매월당의 차살림의 두 번째 특징은 방바닥을 파내고 만든 땅화로를이용하여 차나 물을 끓이는 것입니다.



맑고 쓸쓸한 산방의 밤은 어찌 이다지도 긴고.

 

한가로이 등불 돋우고 흙마루에 눕는다.

 

땅화로는 편벽된 나를 넉넉하도록 해주느니

 

손님이 오시면 다시금 차도 설설 끓이네.

 

山房清悄夜何長

剔燈火臥土房

賴有地爐偏饒

客來時復煮茶湯

땅화로의 유용성에 대한 매월당의 칭송은 대단합니다.

자신의 편벽되고 옹졸한 성품은 여러 사람을 그저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데, 땅화로에 불을 지피고 차나 물을 끓이거나 향을 사루면서 지내다 보면 땅화로의 말 없는 덕을 배우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땅화로는 자신의 몸으로 불기운을 보듬고 뜨거움을 참으면서 인간을 말없이 돕는 지장보살의 화신 같기도 합니다.

그것의 고마움을 느끼며, 누구든 자신을 방문하는 이에겐 아무런 시비나 불평하지 않고 성심껏 치를 달여 대접하리라는 다짐이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정말 자연은 이렇다 저렇다 시비분별이 없죠.

 
땅화로는 온돌이 널리 보급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난방 시설이었습니다.

이른바 움집에서 확인되는 신석인의 주거 문화였지요.

땅을 파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 만든 구석기시대의 주거 형태를 보면, 바닥에 면이 고른 돌을 깔고 한가운데에 화로(爐)를 만들어 집 안을 따뜻하게 해주는 난방 시설 겸 취사용으로 썼지요.

주거 문화가 점점 발달하여 온돌이 널리 사용되게 된 뒤에도, 선비들은 초당이나 모정에서 차를 달여 마시기 위해 땅화로를 설치했습니다.

 

방바닥 위에 놓고 이동할 수 있는 화로에 비해 불기운이 오래 보존되며, 방 안의 온기를 유지하는 데도 훨씬 효과적인 시설이기 때문이었지요.

물이나 차를 끓이는 그릇을 땅화로 위에 얹어두지 않을 때는 돌이나 나무로 만든 뚜껑을 덮어두면 불씨가 안전하게 보존되면서 동시에 난방 효과도 있기 때문에 초당, 모정, 초암에는 반드시 땅화로를 만들어놓고 차를 즐겼습니다.

 


매월당의 차살림의 세 번째 특징은 방 안으로 드나드는 방문이 낮고 작다는 점입니다. 초암 자체가 그다지 큰 집이 아니기 때문에집의 규모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건축 기술상의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또한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에 방 안의 온기를 덜 빼앗기기 위한

단열 방법의 하나있겠지요. 그래서 방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어들어 가듯이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네 번째 특징은 매월당이 사용한 차사발입니다. 흔히 말하는 찻잔과는 전혀 다른 형태인 '차완 또는 차사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월당이 차 마시는 그릇으로 사용했던 사발은 두 종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발을 뜻하는 구와 주발 또는 작은 바리를 뜻하는 완입니다.


사발이란 아래는 좁고 위는 넓어 국이나 밥을 담는 데 쓰이는 사기그릇이지요. 주발은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 즉 식기입니다. 바리는 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그릇인데 오목주발과 같으나 입이 조금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는 식기입니다. 구는 은으로 만든 바리를 가리키는 완과 놋쇠로 만든 우 외에 백자 만드는 흙을 사용하여 빚은 것도 있었습니다.

주발, 사발, 바리는 모두 산스크리트어인 '파트라patra' 의 음역인데,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뒤 사찰의 승려들이 사용하는 그릇이 세속의 그릇 문화에 영향을 끼치면서 사용되었습니다.

 

한문으로 표기되는 우리나라 그릇의 이름은 중국의 불교문화를 답습한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식기로 썼는데, 조선시대 사찰의 승려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살림 탓으로 바리때를 식기와 찻잔으로 겸용하기도 했습니다.


완도 처음에는 놋쇠나 은으로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흙을 이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중추에는 무엇으로 말그린 수심을 달래나

맛좋은 새 차가 흰 사발에 가득하네.

中秋何以慰清愁一味新茶滿玉廠

추석에 이런저런 수심을 달래기 위해 매월당은 차를 마셨던가 봅니다.

찻잔으로 쓴 그릇의 색깔이 흰 그릇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백자로 빚은 밥사발을 찻잔으로 대신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승려가 그릇 하나로 식기와 찻잔을 겸용했던 사실을 두고, 불교와 승려들의 궁핍한 수행 생활을 빗대어 빈정거린 유생들의 말이 다반사' 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굳이풀어 보자면 “중들이란 찻잔과 밥그릇이 따로 없다"는 멸시와 천대의 뜻이 함축된 차별 언어 아픈 증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