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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와 담배 산지로 이름난 경상북도 영양군은 교통이불편한 데다가 내륙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까닭에 '육지 속의 섬'으로 부르는 오지다.

 

그러나 이런 곳일수록 산천은 깨끗하게 남아있게 마련이라서 영양군 석보면 한가운데를 흐르는 화매천 삼의계곡은 설악산 어느 계곡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깨끗하기 그지없다.

 

50리에 이르는 화매천 물줄기를 따라 수십 리를 오르다가 봉의골이라는 인적 드문 골짜기로 십 리쯤 들어가면, 갑자기 하늘이 탁트이면서 강원도 대관령이나 지리산 세석평전을 한 부분 옮겨온듯한 드넓은 산상 평원에 널따란 약초밭이 펼쳐진다. 해발 812미터, 맹동산 꼭대기에 펼쳐진 이 별천지는 예로부터 기사회생의 약초로 알려진 '천마' 인공재배와 약성 연구, 그리고 환자 구료에 일생을 바쳐온 유성길 씨의 한과 집념이 서린 곳이다. 이곳 45만 평에 달하는 평원에 펼쳐진 3만여 평의 약초밭은 한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물이다.

 

해발 800미터 천마농장

 

천마)는 한방에서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 약재다. 두통, 불면증, 우울증 같은 두뇌 질환, 간질, 중풍, 고혈압, 뇌출혈, 손발 저림,반신불수 등 뇌혈관계 질환, 위궤양, 식중독, 농약 중독, 간경화, 여러 가지 부인병, 디스크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질병에 뛰어난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정풍초(風草)라는 이름이 있는 만큼 중풍치료에 효과가 높은 약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천마는 깊은 산 속 참나무 뿌리에서 나는 버섯 균사에 붙어서 자라는 기생식물인 까닭에 구하기가 어려워 한약재 가운데 가장 값비싼 것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강원도 춘천, 화천, 홍천, 경기도 가평, 포천 같은 깊은 산 속 참나무 밭에서많이 자라고 있으나 생산량이 절대 부족해 해마다 30톤쯤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국산 천마 약효는 우리나라에서 난 것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오래전부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천마 인공재배에 관심을 두고연구해 왔다. 몇몇 사람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얻기는 했으나 만족할 만큼 인공재배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유성길 씨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인공재배에 성공했고, 또 천마에 감추어진 놀라운 약효를 밝혀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키운 천마를 갖가지 질병 치료에 활용해 중풍, 뇌일혈, 간질, 디스크, 당뇨병, 백혈병, 관절염, 식중독, 위장병, 간경화 등 난치병 환자 수천 명을 고쳤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천마는 산삼을 능가하는 만병통치 약초이다.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이 고향인 유성길 씨가 이곳 맹동산으로 들어온 것은 1969년이다.

 

한국전쟁과 광산사업 실패로 말미암은 유증으로 몸이 바싹 야위고, 정신마저 가물가물하고,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는 등 거의 폐인이 된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전쟁 때 고성지구 전투에 참가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고, 사람 시체를 뜯어 먹으면서까지 살아남으려고 했던 처절한 경험은 그의 육신과 정신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늘 갖가지 악몽과 환상에 시달렸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허약했다. 육군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고, 병원에서 퇴원해 사회생활에 뛰어들었으나 병든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몸이 아파 영 죽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뱀을 수천 마리 먹어라, 그러면 회복한다고 해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뱀을 구해서 하루에 스무 마리씩 6개월을 먹었더니 몸이 좀 좋아지더군요. 그때 뱀이 많은 데를 찾아온 것이 여기 맹동산입니다. 그때 이 산에는 팔뚝만 한 살무사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날마다 뱀을 수십 마리씩 잡아먹으며 몇 달을 지내고 나니 웬만큼 건강이 회복됐다. 건강을 회복하자 약초도 캐고 땅꾼 노릇도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그러나 궁벽한 산골에서 가족을 거느리고 입에 풀칠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늘 배를 곯았다.

 

요 아래쪽에 화전민 마을이 있었어요. 거기서 움막집을 하나 얻어 살면서 개간을 시작했습니다.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내고 강냉이, 감자 같은 거 심었는데 고생이 많았지요."

 

열두 살짜리 딸을 데리고 열심히 땅을 개간하던 어느 날, 갑자기 딸아이가 밭에서 쓰러지더니 일어나지를 못했다. 영양실조였다. 며칠 뒤에는 아내마저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궁벽한 산골에 들어와 살면서 가족이 다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고 보니 눈앞이 아득했다.

 

세상이 싫어졌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며칠을 고민해도 굶주림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풀뿌리 죽으로 목숨을 이어오다가 마침내 굶어 죽게 된 현실이 몹시도 비참했다.

 

굶주림과 고민으로 수척해진 몸을 이끌고 절망에 빠져 죽어야할 것인가, 살아야 할 것인가'를 되뇌며 산을 방황하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괭이를 손에 들고 걸음 가는 데로 비칠비칠 가다 보니 멀리 동해에 배들이 떠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를 열아홉 개비나 피웠어. 한 대 피우면서 고민하고, 또 한 대 피우면서 고민하고………. 그렇게 열아홉 개를 피운 거지.

 

그래도 살 길이 안 보여. 그러다가 언뜻 고개를 들어 보니 한 십오 미터 앞에 있는 칡넝쿨 속에 천마 싹이 나 있는 것이 보여요. 내가 헛것을 봤나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천마가 틀림없는데, 마치 시루 속 콩나물처럼소복하더라고. 아, 이게 꿈인지 생신지 믿기질 않아요. 괭이로 찍어서 파보니까 천마 뿌리 한 개가 팔뚝만 해. 내가 아무래도 미쳐서 헛것이 보이는구나 싶어서 팔을 꼬집어보니 진짜로 아파요. 야,이게 꿈이 아니구나, 정말이다. 진짜다. 이제 살았다. 이런 생각을하니까 굶어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던 몸에서 바위라도 들어 올릴 힘이 나더군요."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며 집으로 달려가 쓰러져 누워 있는 딸아이를 일으켜 앞세우고, 쌀 포대 다섯 개를 챙겨서는 산에 올라가 천마를 캐냈다. 팔뚝만 한 천마가 다섯 포대 넘게 나왔다.

 

“가마니 한 장쯤 되는 범위에서 땅을 한 길이나 파냈는데 천마가 계속 나왔어요. 굵은 것만도 두 가마니를 넘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캐낼 때는 힘든 줄을 몰랐지만 다 캐서 집에 가져다 놓고는쓰러져 누웠지요.”

 

천마는 참나무 썩은 곳에서만 기생하는 식물인 까닭에 몹시 귀하고 값도 비쌌다. 그러나 어쩌다가 야생 천마밭을 하나 발견하면 한꺼번에 수백 근을 캐내는 수가 있다. 그 무렵에는 산삼을 발견하는 것보다 천마밭을 하나 찾는 것이 더 큰 횡재였다.|

 

“천마를 서울로 팔러 갔는데, 사려는 사람이 없어요. 천마 한 개가 팔뚝만 하니까 다들 이런 천마가 어디 있느냐, 이건 천마가 아니다, 천마가 이렇게 클 수 없다, 라고 해서 한참이나 실랑이를 했지요.

 

장사꾼들은 한 개에 1킬로그램이 넘는 천마를 본 적이 없으니까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천마 싹을 가지고 가서 이것이 천마싹이 틀림없지 않으냐고 증명해서 팔았는데, 한 근에 10만 원씩을받았습니다.

 

그때가 1969년으로 서울에서 집 한 채에 100만 원쯤 할 때니까 엄청나게 큰돈이었지요. 그때 약초 캐는 사람들이 하는말에 '천마가 한 차면 돈도 한 차'라는 말이 있었는데 천우신조로 그런 행운이 굴러들어온 거지요."

 

천마밭을 발견해 단번에 목돈을 거머쥔 그는 그 돈으로 집을 한채 짓고 산을 개간해 밭을 넓혔다. 그리고 천마에서 얻은 수입을 다시 천마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출처 <발로찾은 우리명의>